일상

눈앞의 사람과 싸우기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노양 2023. 10. 30. 00:53

  사업소에서 간만에 항의를 했다. 무려 일주일 전에 신청한 반차를, 그것도 그사이에 두어번이나 강조한 반차를 오늘 아침에서야 짤라버린 것이다. 조합원이 어쩔 수 없이 반차를 사용하자 <무단 이석>이라고 처리를 해놓았다. 일주일 전에 연차를 신청했는데 그게 <무단>이라니? 담당 팀장이 근태 처리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두 시간 좀 넘게 운용 바닥에 돗자리 깔고 앉아있다가 내일 아침에 정정하겠다는 소장의 약속을 받고, 또 앞으로 <무단 이석>이니 <무계 결근>이니 이야기를 꺼내면 결단을 내리겠다는 경고를 던지고 나왔다. 여차하면 이불 가져가서 잠을 잘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정리하게 됐다.

 

  처음에 해당 팀장에게 항의하니 그는 나에게 이러는 목적이 "당신이 소리지르고 싶어서 이러는 것 아니냐"란다. 세상에나. 눈앞에 있는 사람과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는가? 물론 언성을 높이는 일이 가끔 있다. 항의하기 전에는 실태와 논리를 궁리하느라 긴장하고, 항의하는 중에도 실수는 하지 않을까, 논리에서 밀리지 않을까, 해야 하는 이야기를 빠뜨린 건 아닐까 신경쓰이고, 항의하고 나면 한동안 기분 더러운 게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로 우리는 이미 많이 참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교번제 사업장에서 연차 불허 사례와 근무기준(단협) 위반 사례를 건건이 잡아서 문제제기 하면 걷잡을 수 없는 대전쟁이 펼쳐질 것이다. 물론 조합원들도 '유도리' 없이 회사생활을 해야할 수도 있으니 눈감아 주는 일이 많다. 물론 봐주는 것? 압도적으로 노측이 많다.

 

  둘째로, 노동조합이 자기 권리를 스스로 지키겠다는 조합원만큼은 반드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준법투쟁에 앞장선 조합원이 징계받게 놔둬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연병가 정당하게 사용하겠다고 의사도 밝히고 실제로 사용한 조합원이 압박을 받으면 누가 다음에 용기를 내겠는가?

 

  셋째로, 모름지기 간부는 관리자에게는 서릿발 같고, 조합원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로는 약한 조합원들이 자그마한 자신의 용기와 의사를 하나 하나 모아준 것이 조직이다. 조직이 뱉는 말에는 힘이 있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내가 내는 용기는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조직의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싸워서 기분 더러운 것이 아니라 항의해야할 때 항의하지 않는 것. 판단해야 할 때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싸움이 싫고 꺼려지더라도 그것을 감내하고 눈 질끈 감고 결단해야 할 때가 많다. 하룻 밤이건 이틀 밤이건, 생각보다 크고 깊은 투쟁을 머릿속에 늘 염두에 두고 결의해놓는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