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시진핑 3연임과 모택동식 정치문화

노양 2022. 11. 27. 02:37

  전리군 선생의 책을 읽다가, 중국에서 한 파벌이나 인물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기술관료의 권력 독점을 가로막은 '정치 우위' 기조가 있다는 해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책의 극초반에 나왔던 언급이라 책의 중심내용과는 다소 관련이 없이 일단 내가 꽂혔던 부분이다.

  소련이나 다른 동구권 국가들에서는 혁명세대가 은퇴한 이후 공업발전을 통한 생산력 증대에 핵심 역할을 하는 이공계 엘리트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생산력 발전이 국가적 제일과제였던 상황에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피했고 더 나아가 이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이유도 딱히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생산력 발전 경로는 지극히 주의주의적이었으며 객관적 요소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적 판단과 지도'로 결정되었다. 15년 내에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희망사항'이 곧바로 경제부문의 '목표'가 되었다. 대약진 운동은 그러한 경제발전계획의 대표적 사례였다.

  역설적이게도 그 덕에 중국은 혁명 이후 냉각, 순치, 제도화 따위로 일컬어지는 혁명국가의 전형적 경로를 걷지 않을 수 있었다. 끊임없이 역동과 혼란을 추구했던 중국공산당, 특히 모택동의 정치적 행보는 경제발전계획의 효율성을 뒷전으로 미룬 대신 사상과 정치가 계속해서 인민 대소사의 핵심에 위치하게 했다.

  모택동 사후에도 기술관료가 권력을 장악하는 대신 정파들이 정치적 토론과 평가를 앞세워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암묵적인 룰들이 만들어졌다. 국가주석직 재임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한다거나 상무위원 연령을 제한한다든가 한 정파가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 시절을 거쳐 탈정치화와 경제발전 우위 노선이 공산당 내외에 자라났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타났던 이공계 출신 기술관료들의 권력계층화 현상이 나타났고 이를 견제할 만한 정치적 가치, 노선, 정세판단 따위는 없었다. 모택동이 권력 장악과 유지를 위해 즐겨 사용했던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정치문화가 없어지면서 엘리트층이 조용히 권력을 장악하고 그 토대를 튼튼히 다져온 셈이 됐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3연임과 사상통제는 모택동식 정치문화로 인해 억제된 권력독점 현상이 비로소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산당이 '개명한 전제' 노선을 버린 것은 아니며, 공산당이 노선을 만들고 인민을 계몽하고 촘촘한 동원체계를 주도하는 것은 모택동 시대부터 내려온 일관된 기조이다. 그러나 여태껏 그러한 체제 내에서도 일정한 논쟁과 견제가 가능했고 통제 이면에 유화와 해방의 공간이 있었던 것은 공산당 나름의 정치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진핑 3연임은 그런 문화로부터 다른 무언가, 어쩌면 소련공산당이 밟았던 전철과 비슷한 경향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징표일런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