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대도시의 사랑법>과 탄식소리

노양 2024. 10. 31. 23:44

  엊그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뒤늦게 봤다. 서울 한복판 영화관이었음에도 관객이 5~6명쯤 되었나? 분명 자리를 고를 때 양옆에 사람 없는 곳을 골랐는데 바로 옆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내가 앉으면 자리를 확인하지 않으실까 하였으나 그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들고계신 티켓을 얼핏 보니 열이 달랐던 것 같지만. 급기야 광고시간에 계속해서 말을 거는데,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면 안 된다, 내가 나이 여든인데 이렇게 정정한 이유가 있다 등등. 진성 E 성향이신데다 퀴어영화를 보러 오실정도로 개방적이신걸까?

  살짝살짝 혼잣말을 곁들이시길래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는 옆자리로 옮겨앉았다. 그러던 중, 예의 그 할머니의 탄식소리가 두 번 들렸다. 주인공이 구찌남과 뜨거운 밤을 보내는 순간과 또 다른 주인공이 산부인과에서 자궁모형을 드잡던 그 장면에서. 아. 아마 이 영화의 정체를 파악하고 온 관객은 확실히 아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장르를 파악하신 이후로는 더 이상 탄식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자리를 잘 지키셨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자리를 일으키셨다가 쿠키영상이 나오자 다시 앉아서 다 보고 나가셨다. 그 할머니가 탄식을 거두고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 환경을 더는 '안 견디기'를 택하지 않았으니 그분의 신념과는 별개로 나름 마음에 여유가 있는 분 아니셨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침묵에도 나름 용기가 필요한 것일지도. 나이가 들수록 꼰대화가 되어가는 것은 뇌과학에서도 밝힌 바라는데, 그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빨아들이고 수용할 에너지가 있는 사람으로 나이먹어가길 바란다.

  영화 자체는 정말 몰입해서 보았다.  주인공 둘 다 전형과는 거리가 먼 특색이 있었기에 시간에 비해 스토리가 알찼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때론 웃다가... 아니 대부분 웃으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성소수자 운동이 넘어온, 넘어갈 질곡을 떠올릴 때 동시대의 일상을 소수자의 시각으로 성큼 보여주는 이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웃는 것 자체도 하나의 드라마와 같다는, 뻔한 감상도 하나 덧붙여본다. 이런 영화가 나오고, 사람들이 즐기고, 정말 전형적인 흐름이지만 그 전형 하나하나가 아직은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