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파업에 들어와 하게 되는 생각

노양 2024. 12. 10. 23:53

파업을 할 수 없는 노조는 진정한 노조가 아니다.

 

한 퇴직 선배가 기고한 글의 요점이다. 예전같으면 그저 가슴을 울리는 글로 읽고 넘어갔겠지만 이번에는 참 남다르다. , 파업지침을 사수한다는 것은 그 집행부의 지도력을 시험하는 잣대임과 동시에 자리를 버릴 각오를 하고 조합원들을 이끈다는 것을 의미하는구나.

 

요새 하는 파업이 나름 합법파업의 틀을 쓰고 온실 속에서 하는 파업이라지만 파업기간이 평소보다 훨씬 깊은 금전적, 감정적 골이 드러나는 시기임엔 분명하다. 평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쟁점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하며 원칙 사수와 당장의 파업대오 유지를 두고 판단해야 할 시점도 찾아온다. 조합원들과 불편한 대화도, 선배들의 이런저런 의견과 중재도 많이 들려온다. 고민하던 내용, 말했던 고민을 수정해야 할 때도 있으며 그것이 번복으로 비춰질 때도 있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에게 또는 다른 간부들에게 비판을 받거나 감정적인 욕을 듣는 순간도 있다. 세상 일을 하다보면 모두 찾아오는 어려움이지만 파업기간이 되면 이 모든 것이 짧은 기간에 강도가 높게 응축되어 벌어진다.

 

마음이 급해도 태산처럼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빠르게 선택하고 소통해야 할 때도 있으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이나 생각을 준비 없이 발설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가장 가까운 동지들과 먼저 우려되는 지점부터 털어놓고 예상되는 난점들을 짚어본 후에 동심원을 그리듯 발화할 필요가 있다. 무심결에 뱉은 의견이 조합원의 역린을 건드릴 수도 있다. 또한 중재안이나 타협안은 특히나 신중하게 내뱉어야 한다. 한 번 물린 원칙의 선을 다시 회복하기란 어렵다. 외부적인 상황의 변화, 상대방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한 번 뱉은 말을 스스로 주워담는다는 건 거짓말을 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파업 기간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대부분 조직 문제에서 나온다. 특히 목표 또는 지침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조직 전체의 단결과 내 단위조직의 단결 사이에 치밀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전술적 유연성의 이름으로 내 조직이 전체 조직의 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또는 전체 조직의 수준보다 현 조직의 수준이 떨어질 때 내 조직이 감당할 수 없는 원칙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집행부의 논의와 판단이 중요하다. 가장 치밀하게 고민하는 자가 현명한 판단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 조직에서는 주로 집행부가 그 역할을 맡는다. 지도자 한 명의 판단보다는 집행부와 함께 판단하는 것이 낫고, 조직의 현실과 미래를 평소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과 논의를 빙자한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것보다는 고민 속에서 이뤄지는 토론을 하는 게 낫다. 집행부의 논의에서 분포가 비등하다면 가능한 한 발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선택을 결의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거기서 결의가 된다면 지도자는 필사적으로 이를 사수해야 한다.

 

한 번의 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대응을 수시로 논의하고 후속 과제를 도출, 집행하는 것까지 책임져야 한다. 멋있는 결정을 내리면 장렬하고 마음이 떳떳할 수 있다. 그러나 운동을 마음 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바깥에서는 집행부의 결정을 바라보고 대부분의 조합원들도 결정의 시기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남는 것은 그 결정에 따라 생기는 각 조합원의 분노, 실망감, 배신감 따위의 감정과 갈등구도이다. 따라서 결정 이후에 발생하는 논란을 어떻게 최대한 해소하느냐, 조직적 타격을 최소화하느냐가 조직적으로는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순간, 중요한 것은 조급해하지 않고 충분한 토론을 거치는 것이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길을 선택하는 것. 한 발자국 후퇴할 때는 더욱 신중하게 토론하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 말이 쉽지 실제로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드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자, 누군가 보면 당연한 말을 뭐 그리 길게 쓰냐 할 수 있지만 그 당연한 이야기들을 기회 될 때마다 복기하고 구체적 상황에 대입해 평가하고 이후를 준비하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