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고 정말 미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포스터에 미친 영화라고 써있어서 역시 이 표현이 제격이다 싶었다. 문구 뽑는 사람도 많은 고민이 들지는 않았을 듯.
잔인하고 징그러운 장면 잘 못 보는 편이다. <곡성> 볼 때도 귀 물어뜯는 장면은 눈살 찌푸리며 제대로 안 봤다. <미드소마>?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넷플릭스로 봐서 고개 돌리기 편했다. 그런데 왜 <서브스턴스>를 보았나? 첫째, 사실 잘 몰랐다. 뭔가 고어하다곤 했는데 얼마나 고어한지 감이 안 왔다. 둘째, <미키17>의 밋밋함에 실망해서 다른 영화를 하나 보고 싶었다. <퇴마록>을 볼까 했는데 그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얼마 안 지났으니 간만에? 셋째, 영화 시간이 19시라 딱 적당했다.
중반부까지는 딱 눈살 몇 번 찌푸리며 잘 봤다. 주인공 본체의 정신분열적 태도와 분노, 핑계, 회피 다 절절하게 느껴졌고 본체, 회춘체(?) 모두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이입도 됐다. 아 현재의 관계와 모습, 건강상태에 소중함을 느끼며 이 순간을 풍부하게 하는 데 집중해야겠구나 하는 뻔한 교훈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아니, 이거 이렇게 교과서적인 교훈을 전달하려는 작품이었나?
그런 걸로 각종 상을 받았을 리 없다는 불안감이 정말이지... 예상과는 아득히 다른 번짓수에서 스크린을 찢고 나왔다. 바디 호러라는 장르란 이런 것이구나... 나의 면역력을 과대평가했다.. 옆 뒤 앞 사람들은 어떻게 미동도 않고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걸까... 지금 상영시간이 몇 분 지났지...?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한동안 잠잠했던 역류성 식도염이 도지는 것 같았다.
다만 그 길고 긴 혈투와 피칠갑의 장면을 넘어 관객들에게 피를 난사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웃음이 나왔다. 혼자 이 영화를 봤다면 그 장면에서 박수를 치며 봤을 것이다. 이게 바로 카타르시스라는걸까? 대학 다닐 때 들었던 수업에서 카타르시스란 개념에 대한 정말 속시원한 설명을 들었던 것 같은데 한 5년째 떠올려볼래도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에 같은 선생님이 말해준 '마치 똥을 참았다가 쌀 때의 그 느낌', '이열치열' 따위의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묘사만이 기억난다. 여기에 더해 '이판사판', 좀 더 풀어 이야기하면 '포기한 지점, 감추고 싶었던 지점을 공개하며 공격무기로 삼는 희열과 쾌감'으로 이 장면에서 내가 느낀 카타르시스를 설명할 수 있겠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나? 포기하고 인정하고 드러낸 뒤 '그래서 어쩔?', '될 대로 되라지' 같은 마음이 들었던 순간들 말이다.
마치 인정받지 못하는 것, 배제당하는 것들이 그 자체로 사회적인 약점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외치는 절박한 행위가 곧 영웅적이고 존격받을 만한 용기로, 행동으로 인정받고, 그것이 자긍심이자 긍정적 정체성으로 전환되는 과정. 물론 영화상 묘사하는 이 과정의 수행은 소멸로 끝나지만 소멸, 제거라는 결론은 이 영화의 설정에서부터 어느정도 예측가능했다. 그리고 개인이 행하는 많은 수행적 과정이 단선적이고 아름답게 끝나지는 않는다. 때론 투쟁과 정치행위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론 배설적인 행위에 그치거나 자살로 끝맺음되기도 하니까.
인간, 특히 소수자적이거나 배제된, 버림받은 자로서의 처지에 처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 종착지를 예측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아득바득 밟아갈 생의 욕구와 내적 갈등, 성찰 따위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 영화의 백미는 프랭크를 만나기 전에는 미처 열지 못했던 문을 열어젖힌 제3체(?)의 용기, 어떻게든 까치설날 무대에 서고야 말겠다는 욕구, 그것을 위해 신체적, 사회적 제약을 이겨내고 방송국으로, 무대로 걸어갔던 그 걸음, 무대에서의 발화, 마침내 그 모든 감정, 그리고 육체적 한계마저도 피로 분출하고 관객이 남녀노소 외모 불문 똑같이 그 피를 뒤집어쓰는 과정이야말로 마음이 미어지며, 놀라우면서, 속시원한 시퀀스였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에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 그 순간을 위해 위액이 역류하고 손을 꼭 쥐며 눈살이 찌푸려졌던 두 시간을 견뎌내온 것이었을까.
그렇다고 다시 이런 장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것이냐. 그건 잘 모르겠다. 일단 한동안 괜찮았던 역류성식도염이 도졌으니 그것부터 가라앉고... 오랜 시간의 쿨타임을 거치고 생각해볼 일이다. 조만간 <퇴마록>이라도 보러 영화관을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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