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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착취도시, 서울』, 2020., 조문영 외,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 2023.

노양 2025. 2. 10. 23:55

  얼마 전 영등포고가 아래를 지나다 컨테이너로 임시주거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영등포역부터 고가 사이는 유서깊은 쪽방촌이다. 로드뷰로도 그 골목이 나오지 않는 곳이다.

 

찾아보니 이런 사연이 있었다.

 

300실과 96실의 간극…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 ‘제길’ 갈까 [추적+] - 더스쿠프

영등포 쪽방촌이 ‘재개발 절차’에 들어간다. 사업주체는 영등포구, LH 등 공공이다. 개발 방식은 독특하다. 재개발이 끝난 후에도 쪽방촌 주민을 이곳에 ‘재정착’시키기 위해 선순환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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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였나, 동자동 쪽방촌 관련 서명운동을 접했는데 공공개발을 둘러싼 갑갑한 상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뒷걸음질 친 동자동의 4년…공공개발 끝내 좌절되나

“지금은 정부가 공공개발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서울역 쪽방촌에서 10년 넘게 살아온 윤용주씨는 불길한 예감을 말했다. 그의 예감은 그리 틀리지 않는다. 지난 2월 5일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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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서관에 간 것은 전혀 다른 책을 빌리기 위함이었지만, 서가에서 귀신같이 이 두 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착취도시, 서울』은 예전 동네 살 때 읽으려고 희망도서 신청은 해놨다가 못 읽고 있었고,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는 마침 위 기사를 읽었기에.

 

  부끄럽지만 공공개발이란 게 뭔지, 영등포 쪽방촌과 동자동 쪽방촌의 개발경로가 어떻게 다른지 등 모두 처음 알게 된 이야기였다. 구호로서의 '공공개발'과 '순환식 재개발'은 여러 차례 들어보았지만 현실에서 그게 실현가능하겠어? 싶은 생각 속에 관련 기사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 를 읽고 들었던 생각은 '생각보다 반빈곤운동이 오랜 걸음, 긴 여정을 걸어왔구나. 그리고 그러면서 주체들을 만들고, 사회적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공공개발'이라는 개념을 관료들의 책상 한 가운데까지 밀어넣어왔구나'하는 것들이었다. 쪽방촌에서의 공제조합 운동과 마을 집회 이야기를 읽으니 그간에 이상론적이라고, 쉽지 않은 것이라고만 여겨왔던 풀뿌리 운동의 가능성과 그것이 개인의 삶에서 지니는 작지만 소중한 의미를 결코 무시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운동이 봉착한 현실적 어려움도 잊지 않아야겠으며 너무도 공감이 가지만.

  2000년대 이후로도 홈리스 운동과 반빈곤 운동이 진일보하며, 그리고 그것이 운동에 부채감을 지니고 있던 민주당 정치인 및 그들의 인적네트워크와 결합하며 공공개발이 영등포 쪽방촌과 대전 쪽방촌에서 현실화될 수 있었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특히 김현미 장관은 주택정책 측면뿐만 아니라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철도의 KTX 승무원과 해고자 복직 문제를 풀어갔던 인물인 만큼 각계의 진일보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를 짚어볼 필요성도 느껴졌다. 흔히 지배계급의 정세와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데 그 세부적인 요소로서 관료 개개인의 출신성분, 그들의 정책 구상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비공식적인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 시대적 분위기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물론 이전까지 각계에서 제기했던 해당 영역의 제1순위 과제들이 현실화된 셈인데 20여년 넘는 주체 조직, 의제화, 세력화와 때론 긴 시간 동안 패배로 점철된 투쟁들이야말로 필요조건이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결국 안전운임제는 정권 교체 이후 일몰의 턱을 넘어서지 못했고, 철도의 고속철도 통합도 연구용역 중단이란 형태로 무산되었으며, 쪽방촌 공공개발 역시 영등포와 달리 동자동은 여전히 표류하게 되었다는 점 또한 이제는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다.

 

  『착취도시, 서울』 은 그 내용보다도 넓은 의미에서 운동사회의 '인적 네트워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란 고민을 안겨주는 책이었다. 쪽방촌 공공개발 사례에서도 얼핏 엿보았듯, 민주당의 주축을 구성하는 80~90년대 학번에게 그 나름대로의 시대적 감수성과 공통의 경험으로 묶여있는 네트워크 자원이 있었다면 다음 세대의 운동사회 또는 진보연하는 개별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자원이 배경에 뒷받침될 수 있을까? 그런 층이 얕을수록 관료층의 두터운 벽이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보이는 게 아닐까?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에서는 빈곤사회연대의 김윤영이 쓴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과 『착취도시, 서울』이 곧잘 미주로 등장한다. 누군가는 기자로서, 누군가는 활동가로서, 누군가는 연구자와 학생으로서 서로의 문제의식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그 결과가 책으로, 독자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각자 한 권의 책으로 남는 것을 넘어 시대와, 서로와 계속해서 공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활동가들부터 이런 책을 쓴 사람들과 읽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 희망이지만 또한 아쉬움이다. 진보정당운동이 활발했을 때에는 진보정당이 일정부분 그런 역할을 했었고 지금도 각종 조직과 학술운동이, 민중언론이 그런 역할들을 하곤 있지만 뭔가 서로 더 해볼 수 있는 게 있을텐데 하는 답답한 마음도 여전하다. 그것을 운동적 역량이라고 부르든 세력화라고 부르든 말이다.